푸꾸옥 가족 여행 후기: 괌·이시가키보다 편했던 건 '공간의 여유'

베트남 푸꾸옥은 괌, 이시가키보다 편했다

푸꾸옥 가족 여행 후기: 괌·이시가키보다 편했던 건 '공간의 여유'

푸꾸옥 여행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여력, 여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푸꾸옥은 땅에도, 자연에도, 숙소에도 여분의 공간이 있는 섬이다. 한국에서 익숙해진 효율의 눈으로 보면 조금 낯설 정도였다. 땅도, 자연도, 사람이 쉬는 자리도 어떻게든 더 잘게 쪼개 쓰려는 느낌이 없고, ‘그거 빼도 남는 거 많다’ 이런 느낌이랄까? 이번 여행에서 내가 좋았던 건 어쩌면 그 넉넉함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 아이들과 함께한 푸꾸옥 여행에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이런 ‘뭔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여지, 여력이다. 더 개발할 땅과 국가의 지원이 있었고, 햇빛과 물을 잔뜩 받아 자신감 넘치는 식물들이 있었고, 리조트 공간은 한푼이라도 더 원금 회수해보려는 의도조차 없는 듯 박하지 않고 넉넉했다. 

푸꾸옥에서 받은 인상들

1. 이 곳은 포텐(Potential)의 섬

푸꾸옥 공항의 첫인상은 괌, 이시가키 같은 섬나라 작은 공항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항을 나오면 이 섬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공항 주변에서는 대형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 나는 이 모습을 푸꾸옥 또한 성장 여력으로 읽었다.

‘고작 공사장으로? 성장 잠재력을 느꼈다고?’ 라 할 수 있지만 공사의 규모가 정말 컸다.  대규모 공항 증축을 하고 있고, 오페라 하우스 건축하고 있었고, 이미 화려한 리조트가 가득 차있는데 리조트를 추가 건설하고 있었다. 한국은 재건축 신축 아파트 공사 정도가 그나마 대형 공사일텐데, 주거가 아닌 초대형 개발 수요와 그걸 받쳐줄 공간이 남아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2. 식물들의 자신감이 넘치는 섬

아열대 섬답게 나무들은 자신감이 넘친다. 햇살도, 물도 많고 따뜻하니 토양은 촉촉하고 나무의 키는 크고 꽃잎과 이파리는 활짝 펼쳐져 있다. 강렬한 해에 지쳐 커질 대로 커지다 오그라들거나 타버린 잎들도 있다. 야자수의 갈라진 잎조차 해를 다 받으니 감당이 안 돼서 효율상 갈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 

리조트 산책로를 따라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

이 나무는 리조트 곳곳에 있던 나무다. 평범한 나무인데 어찌나 잎이 단단하고 기세가 넘치는지… 나는 이걸 빨랫방망이 나무라고 이름 붙였다. 뽑아서 빨래 방망이로 써도 될 것 같아서….

빨랫방망이 나무

먹는 채소 또한 어디서 먹어도 정말 싱싱했다. 여기는 콜드 체인이 잘되어있나? 그릇에서 꺼내 땅에 심으면 다시 자랄 것 같은 정도?로 모든 음식에 곁들여진 채소의 신선함이 남달랐다. 

3. 위화감이 거의 없는 섬

나의 베트남 방문은 고작 십여년전 다낭과 이번 푸꾸옥이 전부지만 신기하게도 베트남 여행에는 이질감이 별로 없다. 음식도 입에 잘 맞고, 또 베트남 사람들은 빠르고, 부지런하고, 또 적당히 무관심하다. 또 안되거나 불편한 감정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동남아 특유의 느긋함에 무언가 더 더해진 느낌이랄까? 

나는 한국인의 성격이 급한 건 기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우리나라는 봄, 여름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겨울을 굶어야 하니 서두름이 몸에 밴 것이 아닐까하는 가설이다. 그런데 베트남은 겨울도 없고 먹을 것도 넉넉한데도 이런 빠릿함과 명확함이 섞여 있어서 이 나라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푸꾸옥 리조트 후기 - 풀빌라의 축복이 끝이 없네

왜 푸꾸옥을 부모님이나 아이들과 함께 오는 대가족 여행지로 많이 찾는지, 완전 이해했다. 

푸꾸옥에서는 방 하나가 아니라 수영장이 딸린 건물 한 채, 풀빌라를 통째로 빌려준다. 이전에 친구들과 다낭 여행을 왔을 때는 2층 풀빌라를 빌리고서도 매일 외출해서인지 풀빌라의 장점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가족 여행에서 3베드룸 풀빌라에 묵으며 축복을 백배 체감했다.

1. 완벽히 개인화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숙소였다. 

내가 묵은 숙소는 빌라 한 채에 거실 독채, 방1 독채, 방2·3 독채로 되어 있었는데 각 방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각기 딸려 있고 방마다 별도 출입구가 있었다. 그래서 거실에서 다 같이 놀다가도 쉴 때는 각자 방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고, 놀고 돌아와서도 방해받지 않고 씻고, 쉴 수 있었다.

괌, 이시가키 등 리조트 여행을 다녀왔을 때는 리조트의 방을 빌리는 형태였다. 문제는 가족 여행이라 커넥티드 룸을 열어두고 있어서 편하기도 했지만 묘하게 신경이 많이 쓰였고 같은 방을 쓰면 더욱이 편히 쉬기가 어려웠다. 

2. 우리 혼자 리조트 쓰나? 사람에 치이지 않았다

넓은 리조트 전체를 우리 가족끼리 빌려 쓰는 것 같다고 느꼈다. ‘와 여기 우리뿐인가?’ 싶은 여유와 자유로움. 사실 조식 먹을 때 보면 사방이 한국인인데, 리조트에서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각자 리조트의 빌라 한 동을 빌려 쓰기도 하고, 이동할 때는 버기카를 불러 따로  다니다보니 그런 듯 하다. 

사람 없이 한적한 리조트 안 길

3. 이동과 짐나르기의 번거로움이 거의 없다

리조트 내를 버기로 이동하다 보니 아이들도, 오래 걷기 힘든 어르신들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특히 수영장이나 바닷가를 나갈 때, 짐을 잔뜩 가지고 가는 것도 쉽고 지칠때까지 놀고 버기를 타고 편하게 다시 돌아 올 수 있었다. 이런 이동과 짐챙기기 놀고 돌아오면서 생기는 여분의 피로와 짜증이 없었다. 

푸꾸옥 리조트 밖 후기 - 전전긍긍 안해도 괜찮네

리조트를 나갈 일이 많지도 않지만 나가도 뭐가 없다. 하지만 대충 찍어서 가도 너무너무 만족스러웠다. 

1. 고민고민하지마 - 리조트 앞 맛집들

뉴월드 푸꾸옥 리조트 앞은 정말 뭐가 없다. 그래서 가끔 저녁을 리조트 근처에서 먹기 위해 10개 남짓한 리조트 앞 가게에 가야하나? 망설였다. 보통 리조트 앞 가게는 비싸고 창렬하다는게 통설이니까.

그래서 어차피 가야하지만 괜찮은 구글 리뷰를 보면서도 전전긍긍하며 피자집(Thyme Bistro)에 갔는데…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친절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다음날부터 마사지 샵(Sen Spa)과 태국 음식점(Thai Papaya), 베트남 음식점(Com Tho Tay Cam)을 갔는데 모두 맛이 있었고 가격도 정말 괜찮았다. 7그릇 시켜서 5만 5천원 정도? ㅎㅎ 

고르느라 애쓰지 않고 그냥 앞에 있는 데 들어가도 괜찮네? 어디가 괜찮은가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2. 계획도시의 스케일 - 선셋타운과 부이페스트 야시장

푸꾸옥에서 설계자로 일했다면 참 행복했을 것 같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공간도 컸지만 한 번에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 자체도 크다고 느꼈다. 선셋타운과 부이페스트 야시장은 계획해 만든 관광타운임에도 기계적이거나 조악하지 않았다. 메인스트림은 길도 아주 넓게 건물도 규모감을 아주 크게 해서 시원시원하다. 키스브릿지앞 대형 건물을 보고 ‘콜로세움이야 뭐야’ 싶었다.  메인스트림 아래로 내려가면 해변을 끼고 각종 식당가가 언덕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언덕 지형을 따라 골목과 계단이 층층이 이어져 오래된 유럽 마을 같은 분위기가 난다. 

해 질 녘 2층 버스에서 본 야자수 길

해안가의 Sorento라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불꽃놀이도 보이고 시원하고 바다도, 석양도 잘 보여서 행복했다.

3. 지독한 컨셉지향 - 꾸밈Max아니지만 예쁜 선셋타운 시멘트 건물들

선셋타운은 이름처럼 바다의 석양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경사진 땅을 따라 파스텔톤 시멘트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더 예쁘다.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면 정말 은은한 해에 물든 것 같은 색이 된다. 

흥미로운건 이 건물들의 외양이다. 한국에서는 외벽에 외장재를 붙이거나 벽돌 자체를 드러내는 건물이 많은데, 푸꾸옥의 건물은 시멘트로 밋밋한 벽체를 만들고 색을 칠한 건물이 대부분이고 다 비슷하게 생겼다. 덧창이나 입구 장식도 나무나 시멘트로 대충 모양만 낸 것들이 많았다. 외장재를 붙인 것 같은 건물도 가까이 가보면 선을 그어 둔 것이고…

가까이서 보면 너무 허술한데 컬러가 맞고 바다와 석양이 더해지니 꽤 그럴싸했다. 대단히 뭘 하지 않아도, 그룹이 되니 예뻤다. 한국의 각자는 예쁜데 어울리면 이상한 건물들과는 다른 효과가….  처음에는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어서 이렇게 했나? 싶었는데 사실 선셋타운 자체의 테마가 이탈리아 지중해 도시라 이탈리아 식의 회벽을 활용한 것이라 한다. 

이만한 면적을 한 콘셉트로 밀어붙이려면 관광타운을 국가 지원하에 크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싶다.

1인당 공간이 넓은 곳에서의 여행이 주는 편안함

이번 푸꾸옥 여행은 넓은 숙소에서 쉬고, 바다에 나가고, 맛있는 걸 먹고, 가끔 선셋타운에 다녀오는 정도의 여행이었다.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라 외출이나 탐험이 거의 없어 참 심심한 여행 같은데 만족스럽다. 뭔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잘 쉬어서 만족스러울 수 있구나.

리조트에 머무르며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생활도 돌아보았다. 2년 전까지는 도심 한가운데 살았다. 강남역에서 택시로 8분… 처음 이사 왔을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다. 뭐든 편하고 좋은 것들이 다 주변에 있었지만 대신 매일 경쟁에 대해 생각했고, 땅값이 비싸니 사람들도, 건물들도 모든 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지금은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울 외곽에 산다. 하지만 단지 정원이며 집이며 도로 폭, 다니는 병원의 공간까지 내가 점유하는 공간 자체가 전체적으로 넓어졌다. (병원 임대도 기본 300평 이렇다 ㅎㅎ) 그리고 여기 산 지 좀 익숙해지자 그 넓음이 여유와 삶의 만족도를 생각보다 크게 좌우한다는 걸 이사 와서야 알게 됐다.

나는 이걸 1인당 공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리조트에서는 우리 가족만 온 것처럼, 풀빌라 안에서는 각자 온 것처럼 지내며 편안함을 느낀 것 또한 이 역시 1인당 공간 점유율이 넓어졌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같이 있을 때는 충분히 같이 있고 떨어지고 싶을 때는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 있는 공간의 크기와 구조가 자유로움과 여유를 주는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남긴 공간에 대한 생각

한국 사람이 조급한 게 겨울 때문이라는 내 가설을 떠올리면, 나도 지금 겨울을 대비하듯 일하고 있는지 모른다. 좋은 집이나 넓은 집도 물론 갖고 싶다. 하지만 정말 원하는 건 어쩌면 사람과 공간 사이에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삶인지도 모르겠다.

폴 그레이엄은 도시와 야망에서 도시마다 무엇을 원하라고 속삭인다고 했다.  어떤 공간에 오래 머물면 내가 원하는 것도 조금씩 달라지는 걸까. 이번 여행이 나에게 여유를 원하라고 속삭인 건지, 원래 내가 원하던 게 이거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Last updated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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