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료가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냐고 물어왔다. 내가 부럽다며…
‘제가요? 😅^^:‘ 내가 누군가에게 영어를 이야기할 짬이 아니다. 내 영어는 전형적인 Broken English로 ‘막 용을 쓰는 것’에 가까워서… 이유를 물어보니 나는 말도 좀 편하게 하고 질문에 답변도 하는 것 같아서라 했다. AI가 있으니 자료나 메일을 보고 쓰는 것은 쉬워졌지만, 토할 것 같고 말하기는 꿈도 못꾼다고.
듣고보니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원체 노베이스라 인박스에 쌓이는 영어 메일만 봐도 숨이 막혔고, 문장 하나를 쓰는 것도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맸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10년 전 외국계 회사에 들어갔을 때와 비교하면 영어가 많이 늘기는 했고, 영어가 조금이나마 편해진 계기가 몇 번 있긴 했다. 그래서 '무엇부터 해야할지 다 몰라서 막막한 노베이스 분들께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의 초보 영어를 조금이나마 다음 단계별로 넘겨준 것들이 무엇인지를 공유한다. 눈물로 쓰여진 역사..
우선! 영어를 못해도 업무를 하기만 하면 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기도 하고,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업무를 하기만 할 수 있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별개다. 영어로 계약이나 협상을 한다면 영어로 유창하고 유려하게 해야겠지만, 메일을 쓰고 가끔 미팅에 들어가는 정도면 기초 영어를 해도 상관없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어설프게 말해도 열심히 알아듣는 것 처럼 뜻만 통하면 된다. 기준을 쏼라쏼라하는 옆 사람에게 두지 말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3줄로 만 말하자. 전달만 하면 된다… 정도로 낮게 기준을 잡아야 버틴다.
1. 영어 메일/글 읽는 것 자체가 겁날 때
메일이나 웹페이지에 영어가 가득하면 압도되는 경우다. 압도되면 일단 읽지 않게 되니 업무가 안 되고, 영어 자체에 멘붕하니 실제 아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못하게 된다…
이 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영어를 잘 읽는 것이 아니라 겁먹지 않는 것’이었다. ‘헉 영어…‘가 아니라 ‘그냥 글자구나. 천천히 읽어봐야겠다.’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난 이런 것들을 했다
영어에 쫄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읽기 규칙
큰맘 먹고 읽으려고 하면, 안 읽거나 미루게 된다. 긴 영문 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이해하려고 하면 비장해져서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읽기 싫어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읽기 위한 규칙을 정했다.
1. 수신하는 모든 메일의 제목을 읽는다.
2. 메일 본문의 앞 두 문단, 마지막 문단은 꼭, 먼저 읽는다.
3. 영어 기사는 인트로를 대충이라도 읽고 소제목을 보며 골라 읽는다.
이렇게 읽으면 대략의 내용을 알 수 있고, 내용을 대충 알면 나머지도 읽을 수 있다.
- 대부분의 비즈니스 메일은 초반에는 용무가, 끝에는 언제까지 뭘 해달라는 요청과 기한이 쓰여 있다. 그리고 가끔은 기한을 보면 그 메일을 다 읽어야 할 괴력과 이유가 생긴다.
- 영문 기사는 앞부분에 요약이 있고 영문 아티클은 인트로에서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흥미로운 내용을 써서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아티클은 대부분 실용글이라 목록 형태의 리스티클(listicle)이 많아 소제목을 보고 궁금한 부분만 찾아보거나 번역기 돌려서 보면 된다.
정말 최소한만 해보자..라는 방법이지만 긴 영어 글 읽기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긴 영어 글도 천천히 읽게 되니 자신감도 생기고 천천히 독해력도 조금 좋아졌고, 주니어 친구들의 영문 초안도 리뷰할 수 있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 글을 내가 리뷰가 되나? 싶었는데, 찬찬히 읽으니 영어 뒤의 논리와 목적 부합성을 볼 수 있었다.
2. 읽기는 하는데 영어 메일/글 쓰기가 안 될 때…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줄었지만 쓰기는 정말 어려웠다. 당시 외출이나 잠깐 자리를 비울 때, 모두에게 Outing: visiting post office to ship event supplies와 같은 짧은 메일을 썼는데, 이 한 줄도 끙끙댔다.
메일을 쓰는 건 더 어려웠다. 사실 한글로도 메일 잘 쓰기가 어려운데 영어로 맥락, 정보와 결정, 요청사항을 적으려고 하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 Hi Lisa, Hi Oliver와 같이 수신자 이름과 쓰다 만 메일이 화면에 가득했고 야근하면서 겨우겨우 완성하거나 유학생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메일을 보냈다. 이러다가 약간의 요령이 생겼다.
영어 이메일 누름틀 만들기
최소의 읽기를 하면 영어 메일에서 자주 보는 문장들이 있다. 인사, 요청, 업데이트 등…
예를 들면 초반의 Hope you are doing well, 파일 보낼 때 Sending you the file~ Here is the file~ 뒷부분의 If you have any inquiries~ Feel free to~ 이런 문장들이다. 눈에 익으면 잘 외워지는데, 이런 문장들을 몇 개 적어두면 메일에 내용을 슥슥 채울 수 있다.
I will let you know.
If you have any inquiries, let me know.
결정과 요청은 불렛으로 쓰기
메일에서 주로 쓰는 문장들을 빼두고 짜깁기 답변을 썼는데, 문제는 그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상황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보니 시제도 목적어도 변경이 필요하고 이러면서 문장이 엉망진창이 된다.
그래서 생긴 꼼수는 요청하는 메일이나 의사 결정 등은 모두 불렛으로 쓰는 것이다. 불렛으로 쓰게 되면 동사, 목적어로 간단히 쓰면 되기에 메일 쓰는 시간을 좀 줄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Please find the details and questions below.
Decisions
- Launch date: June 15
- Target audience: Existing customers
- Budget: USD 5,000
Requests
- Review the attached proposal
- Confirm the schedule by Friday
- Share the final attendee list
영어를 잘 못해도 어쨌든 업무를 진행하기 위한 방식에 가깝지만, 그래도 포기를 하지 않게 되니 자주 사용하는 문장도 생기고 쓰기도 약간씩 늘었다.

PPT·리포트 문장 베껴 쓰기
업무 보고서를 계속 써야 했는데,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문서를 쓰라니… 하지만 이게 정말 도움이 되었다.
파워포인트나 문서는 포멀하게 핵심만 쓰기 때문에 문장이 짧아 익히기가 좋았고, 또 리포트의 구조와 쓰는 말이 반복이 되기 때문에 어떤 동사를 쓰고, 어떤 단어를 쓰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영문 기사 요약 시놉시스 쓰기
시놉시스는 글의 흐름과 핵심 요약을 객관적으로 압축하는 것이다. PR회사에서는 매일 오전 고객사에 해당일 기사를 국문은 영문으로, 영문은 국문으로 병기해 시놉시스로 써서 보냈는데, 결론적으로 난 잘 못했다. 빨리 해야하는데 영어를 잘 못했고 숫자로 문장을 시작하지 않는 것 같은 포멀한 writing convention을 잘 몰라서 맨날 혼났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 달 뒤 이 일은 담당하지 않게 되었지만, 정말 좋은 훈련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사에서 어떤 단어를 쓰는구나 등 업계에서 쓰는 단어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효과없던 것, 원어민 영어배우기
이 무렵 월스트리트 비즈니스 영어회화와 같이 원어민이 실제로 쓰는 더 세련된 비즈니스 영어 표현을 모은 책도 사봤는데, 한두 번 보고 보지 않았다.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하고 지금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당시에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만드는 것 자체가 안 되는데 이런 고급 영어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3. 쓸 수 있지만 말로 읽거나 말하기가 안 될 때…
시간을 주면 메일도 쓰고 보고서도 작성할 수 있었지만 영어로 말하기나 발표는 못했다.
- 회의가 어려운 이유는 명확했다. 생각하고, 고치고, 다시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에 문장이 있어도 실시간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다. 입안에 있어도 입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 발표도 쉽지 않았다. 친구가 영어 말하기는 영어를 쓰게 되면 그걸 입으로 천천히 하는 거라 했었는데… 문장이 너무 입에 깔깔했다. 말을 안 하다 보니 differentiate와 같은 단어를 보면 알지만 말로 안 읽혔다. 또 문장을 어디서 쉬고 끊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제서야 영어 문장을 말하려면 소리 내어 읽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말하기는 리포트 작성처럼 업무하며 연습할 기회가 적었다. 그리고 회사도 나에게 말하기 연습 기회를 줄 이유가 없었다. 이미 회사에는 영어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은데 굳이? 말하기가 필요한 상황은 보통 중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학원에도 다녀봤지만 연습 문장이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워서, 내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요원하다고 느꼈다. 이 때 현타가 세게 왔다.
필리핀 단기 어학연수로 말하기 양 늘리기
마침 몸도 안 좋아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영어가 한이 돼서 필리핀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갔다. 미국으로 갈까 했는데 유학생 친구가 연습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데 필리핀만 한 곳이 없다고 하여 그리로…
- 필리핀에서는 매일 일대일 영어 수업을 5~6개씩 듣다보니 말을 하긴 해야해서 일단은 뱉게 되었다.
- 이 외에 필리핀에서 문법 수업도 했다. ‘주어가 3인칭 단수일 때 동사에 s 붙이기’ 이런 것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쓰기와 말하기에서 다 틀리는 걸 보며 아는 문법과 문장에 적용하는 것을 해볼 수 있었다.
- 생각을 이어서 쓰는 것도 배웠다.같은 말이라도 내가 쓸 수 있는 단어로 짧게 나누어 써보게되었다.
이 후에는 문장이 조금 틀리거나 짧아도 일단 말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막말 영어ㅎㅎ 이 시기의 나에게는 좋은 표현을 더 많이 아는 것보다 머릿속 생각을 영어로 바꿔 입 밖으로 내보내는 경험 자체가 필요했던 것 같다.
4. 말은 하는데 내 영어 발음이 구려서 듣기 싫을 때…
영어로 대충 말을 할 수는 있게 됐는데, 영어 발음이 너무 구려서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당시 말해보카를 열심히 했었는데, 말해보카 오디오 모드로 읽거나 섀도잉하면서도 공수치가…ㅠㅠ 조형기 발음으로 아이-원투-이러는 게…
영어 잘 하시는 분께서 ‘발음보다는 내 뜻만 잘 전달하면 된다’ 라고 하셨지만 말을 할때마다 수치가 와서 ㅜㅜ

구린 발음 개선하기
그래서 ★ 영어 발음 잘하는 방법!!(스크롤 압박 주의)★ 이런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하다가, 우연히 소리튠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온라인 VOD 수업이고 영어 발음 수업이 맞나 싶었지만 ‘영어와 한국어는 발음 방법이 다르고 인생에 한 번은 배울 필요가 있다’는 말에 수강을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영어 자모음 하나하나의 소리를 어떻게 내는지를 다시 배웠고, d를 입을 쭉 빼면 dʒ가 된다거나 하는 발음법이나 æ와 ɑ의 발음의 차이를 알게 되며 재미있었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발음이 훨씬 좋아졌다고 느꼈다.
의외의 변화는 듣기였다. 내가 구분하고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니 상대방의 영어에서도 전보다 잘 들렸다. 단, 영어권 발음만… 홍보 아닙니다. 추천인 코드도 안 넣었음.
한국어로는 처음 듣는 말을 들어도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들려야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어야 들을 수 있다는 건가 싶다. 이를 설명할 전문성은 없지만 연습량 부족으로 늘지 않았던 듣기에도 변화가 생긴 첫 계기라 의미 있었다.
5. 10년째 안 되는 영어 듣기… 안 들려요…
듣기는 계속 잘 안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연습량 부족이겠지만… 늘 단어 중심으로 조금조금 들렸고 컨퍼런스콜을 하면 여전히 너무 안 들렸다. 소리가 작아서 스피커 볼륨을 계속 높이곤 했는데 소리가 작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_^ 초집중을 해봤는데 그럼 금방 졸리고…
필리핀 어학연수 뒤에는 듣기도 자연스럽게 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천천히 말하는 것 외에는 정말 잘 안 들렸다. 그리고 영어에 쫄지 않게 되니, 안 들리면 안 들리는구나 편안하게 대충 듣게 되어서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듣기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안 들려…
6. 지금의 병목 - 브로큰 영어
지금은 영어로 회의를 하고, 질문하고, 발표도 한다. 물론 여전히 잘 못한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막 영어를 하다보니 예전만큼 느는 느낌은 없다. 그렇다 벌써 또 정체가 ㅜ ㅜ
재미있는 것은 과거에는 잘 붙지 않았던 원어민 문장 공부가 지금은 필요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만드는 것부터 어려웠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말할 수 있으니, 내 문장을 더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바꿔 끼울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양으로 승부하는 공부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기마다 돌파구를 만드는 영어 공부법이 있다
다 못하는데 가리는거 없이 다 해야하지 않냐. 맞는 말인데 돌아보면 내 영어는 꾸준히 조금씩 늘기보다 그때 막혀 있던 곳을 건드렸을 때 크게 변했다. 막혀 있는 곳에 따라 그에 적합한 방법이 있었다.
나에게 맞는 영어 공부법을 택하는건, 내가 뭘 모르는지 안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럼 고치면 되지뭐… 그래서 영어 공부가 한동안 제자리처럼 느껴진다면,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든지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영어 전부’ 괴롭긴 하지만….
지금도 나는 다시 다른 곳에서 막혀 있다. 이번에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보다 내가 쓰는 영어 자체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시간은 없고 돈도 없고… 공부법을 알아보며 이래저래 고전 중인데 이건 다음 포스팅에… 직장러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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