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을 주는 일이 힘들 때, 내가 기억하는 세 명의 상사

우리는 모두 같이 일한 사람에게 몇 가지 장면으로 기억된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피드백을 주는 일이 힘들 때, 내가 기억하는 세 명의 상사

나는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어떤 장면으로 기억될까? 크게 상처받고 난 뒤로 피드백 주는 게 확 불편해졌다. 피드백 주는 게 내 역할이지 하면서도 결국 싫은 소리 하는 사람밖에 안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옛 상사들을 만나고 그 불편함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지난 금요일은 참 신기한 날이었다. Weber Day라고 해야 하나? 웨버샌드윅(Weber Shandwick)은 내가 8년 전에 일했던 PR에이전시다. 이중대 부사장님과 점심 약속을 잡았는데, 링크드인에서 당시 사장님이었던 Tyler Kim의 APAC Lead 퇴임 소식을 봤다. 그리고 부사장님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는 사수였던 A부장님을 만났다.

이 세 분과 아주 가깝게 일했느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초기 2년은 프로젝트를 하며 아주 가깝게 일했지만 나머지 3년은 매일 얼굴만 보고 가깝다면 가깝고, 또 멀다면 멀게 일했다. 그럼에도 세 분 모두 아주 나에게는 선명한 몇 가지 장면으로 남아 있다.

Tyler Kim

Tyler(김원규) 대표님은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Burson-Marsteller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뉴스컴’이라는 PR회사를 만들어 대표가 되었고, 이후 글로벌 PR회사 Edelman Korea 사장을 거쳐 Weber Shandwick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내가 웨버에서 타일러를 만났을 때는 직원이 10명 남짓이었는데, 5년 뒤 퇴사할 때는 직원이 90명 남짓이었고 타일러는 한국·일본 대표 겸임에 APAC 위기관리 Lead를 맡고 있었다.

이력도 대단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인상 깊게 기억한 건 몇 가지 다른 장면이다.

Facebook이 한국에 처음 들어오던 때였는데, 피칭하러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계속 장표를 고치던 모습이다. 그러면서 ‘내 친구는 택시에서 이거 하기 싫어서 홍보를 그만뒀어’라고 하며, 다시 장표를 다듬었다. 피칭을 잘한다고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이동 시간에도 그렇게 준비를 하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는 Welcome to Onboard라는 자료를 받았다. We win!

그리고 타일러가 자주 하던 말이 하나 있다. ‘우리가 기자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기자가 찾는 어카운트를 해야 한다.’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당시 나는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게 일이라고 믿고 열심히만 하는 사람이었다. 타일러는 1위를 찾고, 1위 어카운트가 찾는 수준의 서비스를 만들려는 사람이었다. 5년차 쪼렙이었던 나에게 전략적인 관점을 처음 생각하게 해준 일이라, 홍보 일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도 이 말은 그대로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타일러에게서 남은 건, 피칭을 잘하는 사람도 택시 안에서 계속 장표를 고치던 모습이었다.

이중대 부사장님

이중대 부사장님을 처음 본 건 국회에 있을 때다. 2011년 소셜미디어 붐이 불 때, 소셜미디어 강의와 스터디를 열심히 했었는데, 부사장님은 늘 큰 컨퍼런스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허드슨강 사례를 비롯한 해외 소셜미디어 사례를 능수능란하게 소개하던 사람이었다. 역시 에델만 출신이라 그런가, 저렇게 많은 사례를 빠르게 알고 세련되게 발표하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웨버에 입사하고 몇 년 뒤, 웨버가 부사장님이 창업한 회사를 인수하면서 상사로 다시 만났다. (딴소리지만 나는 동경하던 사람을 상사로 만나는 행운이 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음 후후후) 부사장님은 외양이 세련되어 좀 날라리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같이 일해보니 정말 따뜻한 분이었다.

따뜻한 분이시다 보니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간간이 이야기하곤 했는데 늘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점심 먹던 그날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음은 물론이다. 내가 외국계 회사 특유의 숨 막히는 프로세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는 ‘프로세스를 외워, 그럼 이후부터는 쉬워’라고 하셨고, 조직 개편으로 팀원들의 불만이 많아 전전긍긍하자 ‘아래 직원들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 나도 그때는 그게 정말 큰일인 줄 알았는데, 시야가 달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있고,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어’라고 하셨다.

내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도 ‘야, 나가지 마. 나 너 미워할 거야. 아니야, 하지만 난 너의 행복을 빌어줄 거야’라고 하셨다. 웨버는 좀 차가운 회사였던 터라 누가 나가도 그리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아쉬워해 주셔서 감사했다.

부사장님에게서는 정확한 조언과 함께, 내가 떠나는 순간 아쉬운 마음을 표현해준 일이 같이 남았다.

A 부장님

A 부장님은 초기 내 사수였다. 내가 입사했을 때 대리였고 곧 과장이 됐다. 사수와 부사수로 일했는데 피드백을 정말 꼼꼼하게 주는 사람이었고, 그 자리에 기대하는 역할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영리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지런했다.

그러다 보니 그 꼼꼼함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았다. 깔끔하고 새침하기도 해서 내심 미워하기도 했는데, 그러던 중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된 몇 가지 장면이 있다.

A 부장님이 리드한 비딩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늘 그렇듯 냉랭하고 침착하게 리드한 태도와 달리 메일을 보고 자리 뒤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진짜 열심히 했구나.

내가 과장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A 부장님을 이해하게 됐다. 여전히 열심히 일했고, 여전히 최선을 다해 피드백했다. 어느 날 야근 중 해외 출장 중인 A 부장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본인 컴퓨터를 열어 자료를 보내라는 연락이었다. 그런데 알려준 컴퓨터 비밀번호가 한글로 마녀였다. 그게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회사가 커지며 A 부장님이 피드백 줄 사람이 많은 시절이었는데,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도 자기 역할의 일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의미로 비밀번호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때는 조금 짠했다.

A 부장님을 떠올리면 피드백하는 사람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첫 회사에서 이런 일잘러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다. 미워하기도 했고 이해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니 신기하게도 누가 무슨 일을 잘했고 못했는지, 누구를 미워했는지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몇 개의 장면만이 남았다.

나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되고 나서 늘 전전긍긍했다. 선배와 상사는 먼저 이 회사를 다닌 사람으로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도였고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지만, 싫은 소리도 해야 했고 좋은 얘기를 해도 안 좋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그렇게 살게 내비둬. 자기 손해지. 저 사람 인생에 굳이 내가 빌런이 돼야 해?’라는 말을 들었는데, 피드백을 주는 게 누군가의 인생에 빌런이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미움받을까 봐 걱정했고, 사람이니 싫은 마음이 상대에게 너무 티 날까 봐 걱정했다. 늘 이런 내적 갈등이 있었다.

기억되는 건 사건보다 태도인 것 같다

옛 상사들을 떠올리고 보니 좋은 말을 했는지보다 일을 얼마나 준비했고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가 먼저 남아 있었다.

나는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어떤 장면으로 남고 있을까.

작년에 예전에 같이 일했던 후배 두 명에게 연락이 왔다. 심리적으로 아주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아니었던 터라, 무슨 얘기를 하려나 내심 걱정을 했는데, 내가 상사들을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듯 후배들도 나를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 한 친구는 엑셀 알려주신 덕분에 그때부터 엑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그때 해준 피드백이 고마웠다고 했다.
  • 한 명은 되게 힘든 피드백을 줬었는데 그 얘기를 해준 게 고맙다고 했다.

사실 나는 기억이 안 나는 일이다.

내가 상사들을 기억하는 방식도 어쩌면 그런 것 같다. 상사는 잘한 일 하나나 잘못한 일 하나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가까웠든 멀었든 그 사람이 일을 대하고 사람을 대했던 태도가 몇 개의 장면이 되어 남는다.

그렇다면 나도 이미 누군가에게 몇 개의 장면을 남겼을 것이다. 그게 어떤 장면일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다만 후배들의 말을 듣고 나니 내가 두려워한 장면만 남은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용기가 났다.

지금의 나는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어떤 장면으로 남고 있을까.

Last updated2026. 9. 4
CategoryM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