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8개월 단상 - 경력과 임출육은 양자택일의 문제인걸까?

출산을 앞두고 경력단절 걱정에 떨고 있다

지금 나는 임신중이다. 두 달 뒤면 아기를 낳는다. (세상에!) 바라던 임신이고 행복하지만 동시에 임신기간 내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바로 경력단절 때문이다.

서른 아홉 초산 임산부가 되다

지금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은 사실 너무 단순한 이유였다. 내년에 마흔. 신체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나이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랑이나 나나 아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애를 반드시 낳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딩크로 살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결혼한지도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년에 마흔이기 때문에 뭐든 결단을 했었어야 했다. 그래서 작년 4월쯤 시간에 쫒겨 ‘그래! 일단 가능할때 도전해보자!’의 심경으로 산전 검사부터 시작해 운 좋게 작년 9월에 임신, 이제 임신 8개월차 쌍둥이 임산부가 되었다.

임신 준비 후, 행운처럼 바로 임신했다

임신 후부터 지금까지 항상 준비 직후 바로 임신한 것은 정말 행운이고 감사할일이라 생각한다.

일단 임신하기에는 생물학적으로 이미 나이가 많았다. 산전검사만 좀 해보려고요… 라는 말이 무색하게 산부인과에서는 만 35세 이상은 노산이라 바로 ‘난임 코스’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준비가 안된 상태인건 사실이지만 아니 이제 임신을 처음 시도하는데 벌써 난임이라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산전검사로 넘어가, 나는 자궁나이(AMH), 나팔관이 잘 뚤려있는지, A형 간염/풍진 등의 항체가 있는지, 남편은 정자운동성 등의 기본 검사를 받았다. 다행이 자궁 나이도 30대 초반이고 우리 둘다 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사의 말은 썩 낙관적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난임은 원인이 없어서 낙관하기는 어려워요. 일단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는 경우, 주기에 따른 자연임신 시도를 해보고, 임신이 안되면 인공수정, 그래도 임신이 안되면 시험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때는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이 다른 것인지도 몰랐다)

그제서야 임신의 성지 ‘맘스홀릭베이비’에 가입해보니 시험관을 3차례 이상 하고도 임신이 안되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내 주변 사람들도 임신을 준비한다고 하니 ‘사실 임신이 몇년 동안이나 안되서 너무 힘들었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조금씩 내가 임신이 가능하긴 한걸까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정말 운좋게도 배란유도제, 과배란주사를 맞는 선에서 임신준비가 끝났다. 바로 임신이 되었고, 그것도 한번에 2명! 남매 쌍둥이가 생겼다. 얼마나 이게 다행이고 기쁜일인지! 그리고 자연유산이 많다는 임신 초기, 기형아검사, 정밀초음파 등 주요한 과정들을 잘 넘어 지금까지 왔다. ‘아, 우리 아기들 건강하구나’ 라는 안도감과 아기 입체초음파 사진도 보고 태동을 느끼니 ‘아기들’의 실체가 확 느껴져 생각만해도 정말 너무너무 귀엽고 그 자체로 너무 행복하다.

임신내내 경력단절을 걱정하다

바로 임신한게 행운인걸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걱정 되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퇴사한 상황에서 바로 애기가 생겼기 때문에 (정말 퇴사일로부터 4일 뒤 임신함) 임신을 알고 부터 계속 경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단 바로 취업준비를 할 수가 없고 최소 10개월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니까. 취업하고 조금있다가 바로 산휴갈텐데 임신을 알게 된 이런 상황에서 취준을 하는 것 자체가 민폐고…

결국에는 임신 초기 한 달간은 내내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자고 뒤척이고 ‘경력단절’,’재취업’ 등을 검색했다. ‘아…그래서 산휴기간 보장되는 대기업에 다녔어야 하나?’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대기업도 어쩔수 없나?’ 싶었다. 현실적인 얘기가 올라오는 블라인드에도 한결같이 남자건 여자건 아기 낳고 다시 일하는 것에 대해 다들 어찌나 부정적인지…. 우울해지더라. 아, 이게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심지어 난 여대를 다니며 여성의 커리어, 임출육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계속 학습해왔다고, 계속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학습과 실제 현실은 너무나 체감도가 달랐다. 이렇게 한 순간에 커리어와 이별할 수도 있는거구나…

경력단절이라는 말의 실체와 그 간의 내 무관심에 대해 생각하다

지난 시간, 돌아보면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scene1

  • 멋진 외국계 제약회사 여성임원을 인터뷰를 했는데 40세에 아기를 낳으신 분이었다. 당연히 앵글에는 커리어 전반과 함께 꽤 높은 비중으로 임출육의 어려움과 커리어 지속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 회사 차장님이 36세에 임신,출산휴가를 가셨다. 결혼하신지는 7-8년 쯤 되셨던 것 같은데, 굉장한 프로페셔널이라 커리어에 몰빵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어서 너무 의외였다.

후… 정말 사람은 자기 앞 일을 정말 한 치도 알 수가 없다. 당시 나는 32세였는데, 솔직히 ‘대박! 그 나이에도 아기를 가질 수 있다니! 근데 그 나이에 굳이? 이미 커리어 잘 이어가고 있는데… 언제 키우시려고 그러나…’ 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 때는 정말 내가 서른 아홉에 애를 낳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당시는 커리어 밖에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지, 어떻게 더 좋은 커리어를 개발하고 더 나은 직장에 다닐지가 세상의 전부였다.

#scene2

  • 전 회사 임원이 그랬다. 파트타임으로 경력단절 여성을 고용하라고. 훈련된 인력이지만 저렴하게 쓸 수 있어서 좋고, 빈 시간에 할 일을 찾기 때문에 아주 좋아할거라고 (그 자리는 좋은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 영화프로그램에서 하는 <82년생 김지영>을 리뷰를 봤다. 책도 다 봤고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보다가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 싶었다. 나는 김지영이 회사에서 차별받는 장면만 기억하고 아기낳고 경력으로 우울해하는건 하나도 기억 못하고 있었다. 내 일이 아니라서 자체 소거/삭제했던 것 같다.

경력단절 여성을 싸게 쓸 수 있는 훈련된 유휴인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당시에도 매우 분노했었으나 분노하고 잊었다. 김지영이 출산 후 경력으로 고민하는 내용은 가까운 미래, 내가 그리는 미래가 아니었으므로 읽고도 기억에서 지웠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게 내 얘기일 수 있음을 체감한다.

대부분 출산 후에 대해 긍정적 얘기를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경력, 회사 생활은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어렵지만 주어진 태스크를 잘 헤쳐나가고, 결과를 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음에 더 잘하고.. 이런 과정이 야근을 불사할 정도로 좋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결과를 내는 행운까지 누렸다.

또한 항상 주변에 좋은 여성 롤 모델이 있었다. 그래서 사실 사회생활하면서 그닥 겁먹어 본 적이 없다. 여대를 다녔고 주변에 좋은 여자 선배들도 많아서 하면 되는거 아닌가? 어디를 봐도 진군하는 우리 선배들(롤 모델)이 있는데 나도 그러면 되지뭐- 라고 하면서 살았다.

일례로 첫 직장인 국회는 완전 남초 직장이고 유리천장이 심했는데, 나는 당시에 그런 인지 자체를 못했다. 나도 빨리 비서관이 되야지! 라고만 생각했을 뿐…. 내가 아는 5급 비서관들이 2-30명? 정도 되시는 분들이 우리학교 선배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2-30명이면 체감상 엄청 많게 느껴진다)

알고보니 당시 국회의 남녀비율은 9급 행정비서를 포함해 8:2였고 5급 이상 여성 정책비서관은 총 비서관 300명 중 30명이었다고 한다. 내가 본 우리 선배들이 전부였던 셈이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항상 젖과 꿀이 되는 얘기를 하던 그 선배들/언니들까지도 육아, 정확하게 육아와 경력에 대해 물으면 긍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다 ㅠㅠ 당연히 현실을 이야기하시는 것일테지만 솔직히 참 씁쓸하다. ‘아, 언니들은 좋은 얘기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라는 마음… 뭐 선배들의 반응이 이러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듣자마자 좀 우울한 말들

  • 쌍둥이 엄마가 어딜가. 3년간은 꼼짝할 생각을 마라 (난 애기 낳고 3개월 쉴 생각하는데..)
  • 뭐 일을 하냐. 마흔이면 안 그래도 그만두는데 그냥 애 키워 (당신은 일하시면서…)
  • 애 키우는게 제일 중요한 일이지. 애 안키우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려고 그래

꼽게 듣는 걸 수도 있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우울한 말들

  • 대기업은 어렵겠지만 찾아보면 자리는 많아요 (왜 어렵다고 바로 단정하지?)
  • 정규직은 어렵겠지만 저희 쪽 파트나 프리랜서로 일해도 되고 (제 의사는 물어보셨는지?)
  • 솔직히 누가 키워주지 않으면 어려우니까 엄마에게 부탁하고 돈을 많이 드려

가장 긍정적이었던 말들

  • 지금까지 나는 서치도 잘하고 결정도 잘해. 물건도 현명하게 사는 소비자야- 라 생각해왔지만, 내가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정신없어 하는 사람이었나?를 매일 느껴. 그래도 그걸 받아들이고 ‘아 내가 오은영이다!’ 지금 내가 최선이야’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요
  • 꼭 경험해야 하는 행복은 아니지만, 한번 경험하면 되돌아 갈수없는 행복이 있어. 행복의 주파수가 넓어지고, 너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도 세상만사에 관심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될거야.

제일 기분 나쁜 것은 임출육만으로 내 가능성이 제한받다는 점이다

나의 역량은 사실 임신 전과 다르지 않다. 당연하지 않을까? 8개월 쉬었다고 역량이 대단히 소진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임신기간 내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 사실상 일을 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임출육이 예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에서 내 선택지에 바로 제한된 컨디션과 조건을 걸고 얘기하는 상황이 기분 나쁘다. (참고로 프리랜서 제안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다. 임신만으로 나의 상황을 제한하고 파트타임이나 프리랜서부터 들이대는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몸이 안 좋았어도 회사를 다닐 걸 그랬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 육아휴직이라도 썼을텐데… (물론 그랬으면 지금 임신을 못했을 수도 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왜 자꾸 ‘출산 후의 경력 유지가 가능한 여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 PR하는지 새삼 알겠더라. PR할때는 너무 빤한, 고루한 앵글이라 생각했는데,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또 말하는 것…

일하면서도 매일매일 불안하고 미래에 뒤떨어질까봐 우울하다

그래서 오기로라도 애기 낳을 거지만 그 이후에도 더 잘할거고 더 잘될거라고 다짐하고, 일도 하고 계속 공부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앞서간 사람들이 괜한 얘기를 하는건 아니지 않을까’ 싶어 두려움이 앞선다.

임신 증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서 피곤하거나, 집중이 안되는 것도 ‘지금 달려야 할 때인데 왜 그래-‘ 싶으면서 답답하고, 눕눕하다 잠들면 남들 다 일하는 낮시간에 먹잠하는 것 같아 한심하고…

분명 현재 상황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안 그래도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리그 바깥에서 쉬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간 위축되는게 아닌데, 불투명한 미래라니… (정정한다 - 사실 쉬고 있는게 아니라 아기를 키우고 있다. 자꾸 쉰다고 생각하게 된다)

공부하다도 ‘이게 뭔가’ 싶어 쳐지고 우울해지고… 이 전에는 잘 못하는 점이 나올때마다 ‘어렵지만, 그렇지만 조금만 해보면 잘 할 수 있어.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걸 이제는 ‘아, 지금 이렇게 할게 많고 모르는게 많으면 공백기에는 더 쳐지는 것 아닐까.’ 빨리 잘 못해내면 조급하고 답답하고…

미래에 이 시기를 나는 어떻게 말할 수 있게 될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지금, 나중에 이 시간을 어떻게 말하게 될까? 나도 너무 궁금하다. 원하는 대로 됐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만 걱정을 동반하면서 걱정하는 상황이라니..!

내가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란다면 비혼, 딩크, 정자은행을 통한 미혼모 등이 본격적으로 회자되는 지금, 나중에 나와 같은 여성들에게 ‘임신이라는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나도 괜찮았으니 너무 겁먹지 말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출산 후에도 계속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선례가 많아야 당연히 나도 그럴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니까…

커리어를 위해 비혼을 권장하는게 아니라, 여성이 무슨 선택을 해도 원하는 대로 선택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앞선 ‘여성 선배들의 세대의 혜택을 받아 사회에 진출한 우리 세대의 여성이 만들고 헤쳐나가야 하는 일이구나’라는 사명감까지 든다.

그래서 적는다. 나중에 보고 이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혹은 적어도 지금의 생각과 이후의 생각이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경험하고 느끼고 전달할 수 있었으면 싶어서.

그 연장선상에서 얼마전에 노래 듣다가 꽂힌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가사 한 구절을 남긴다.

갈 수 없는 곳이란 우리에겐 없어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어

언제나 식지 않는 마음이 있어

자유로운 내 뜻을 막을 순 없어